2011-07-28 (조회수 : 4677)
| 문화기행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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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문화기행을 다녀오며..... 남경혜 수강생 6월 23일. 출발시간 까지 서울엔 장맛비가 그칠 줄을 몰랐다. 전날 종일 거세게 퍼붓던 빗소리에 출발을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많았었지만 담양은 날씨가 나쁘지 않을 거라며 여행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담당자의 연락이 있었기에 안심하고 설레는 맘으로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사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또 비가 오는 대로, 딱 그 날에만 허락된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우린 무엇이 되었건 기꺼운 맘으로 눈앞에 펼쳐질 자연을 그저 받아들이지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여행은 어딜 가느냐 보다는 누구와 함께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따라 기억 속에 예쁜 추억으로 오래 오래 남게 될 테니 여행이 취소될 정도가 아니라면 고작 날씨쯤이야 가볍게 한 곁으로 제쳐둘 수 있는 일이다. 2005년부터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 압화 강좌를 함께 수강하며 맺어온 마음씨 고운 언니들과의 오랜 인연. 기회를 보아 여행을 꼭 한번 같이 가자고 작은 돈이나마 꼬박꼬박 모아온 것도 오래였지만 서로들 저마다의 이유로 도무지 발걸음을 뗄 수가 없어 늘 안타까웠었는데 로비에 붙여진 담양 문화기행이란 안내문을 보고는 여기라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다 같이 가보자.. 모처럼 욕심을 내어 신청을 했지만 결국 6명중에 2명은 가지 못하고, 넷이서 조금은 미안하고 쓸쓸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출근 시간이었지만 길이 좋아 4시간 남짓 걸려 전남 담양에 도착했고 곧장 죽녹원으로 향해 첫 번째 여정이 시작되었다. 차안에서 미리 나눠준 죽녹원 안내도를 보며 옆에 앉은 언니와 운수대통 길과 사랑이 변치 않는 길은 꼭 걸어보자 맘을 먹었었는데 정작 그곳에선 우리 일행을 기다리신 해설자의 설명을 쫓아가느라 어느 길을 걷고 있는지 조금도 알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오죽과 분죽, 왕대 등등 얼핏 보기에는 같아 보여도 갖가지 다른 종의 대나무들이 서로 이웃하며 한 숲을 이루고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2층 전망대에 올라 담양을 한 눈에 내려다볼 때엔 눈뿐 아니라 마음까지 후련해져 저절로 크고 깊은 숨이 쉬어졌다. 때마침 불어온 세찬 바람에 눈을 가늘게 줄여 뜨고 바람 따라 휘적휘적 춤추던 댓잎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약한 듯 약하지 않은, 당찬 모습이 대견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바람결에 코끝에 와 닿은 대숲의 향기도 여느 향기로는 대신할 수 없는 그 만의 알싸한 매력을 담뿍 지니고 있었기에 좀 더 오래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러 가야 한다는 담당자의 재촉이 야속하고 조금은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음번에 죽녹원에 가게 되면 해설사 없이 아주 천천히 8개로 나누어진 길을 자박자박 걸어보고 싶다. 대를 잘 아는 사람의 설명 없이도 대나무가 기꺼이 친구가 되고 싶다 먼저 손 내밀어 줄 것 같아서 그 어설픈 믿음만 붙잡고 다시금 대숲 한가운데로 걸어가고프다. 식도락의 고장 전라도답게 깔끔하고 푸짐하게 차려진 점심은 여행객의 빈속을 채워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대나무 통을 가득 채운 뜸이 잘든 뜨끈한 밥에 갖가지 나물과 죽순무침, 맛난 된장찌개, 서울에선 비싸서 구경도 못하는 토하젓까지... 찬기가 체 비워지기도 전에 재빨리 반찬을 채워주신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 모처럼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다. 일정을 어찌나 꼼꼼하게 짜셨는지 점심 먹은 걸 소화하기에 딱 좋을 만치의 시간만 주시며^^ 대나무 공예박물관에 우리 모두를 내려놓으셨다. 노곤한 걸음으로 옛사람들의 더없이 소박했던 일상을 돌아보며 차츰 졸린 눈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자연을 허투루 하지 않고 내 집안으로 들여 갖가지 일용품으로 활용해낸 지혜와 정성에 탐복하며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던 바구니를 발견했을 땐 그다지 소용될 곳 없어도 우선 눈에 들면 덥석 사다두었던 나의 경솔한 사치가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장소였던 황토 염색 체험장. 우리 일행들 모두 꽃 만지는 사람들 아니랄까봐 체험장 앞마당에 핀 접시꽃, 루드베키아, 달맞이꽃에 보기 힘든 쪽까지.. 눈이 먼저 꽃밭에 꽂혀버렸다. 염불보단 잿밥이라더니 염색보단 마음으로는 꽃밭에서 노는 쪽을 더 바랬는지도 모르겠다.ㅎㅎ 넷이서 맞춰 입고 간 하얀색 티셔츠에 행여 황톳물이 튈까.. 거품이 바글거리도록 마음껏 팍팍 주무르지 못했지만 차가운 지하수에 행궈 낸 손수건을 뜨거운 볕 아래 한장 한장 펼쳐 널 때는 이런 개운한 재미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또 금새 마음이 헤벌쭉 변해있었다.ㅎㅎ 마지막으로 향했던 곳은 소쇄원. 워낙 이름이 날려진 곳이기도 하고 다녀온 친구들마다 대만족이었다 하여 제법 큰 기대를 했었다. 물론 작년에 다녀온 창덕궁의 비원이 너무 단출하고 소박해서 만인지상인 임금의 자리에 있어도 집을 거창하게 꾸미는 일에는 큰 욕심이 없으셨다는 걸 느꼈었기에 개인이 만든 정원인 소쇄원도 그 규모보다는 얼마나 오밀조밀 아름답게 꾸며졌을까... 그 궁금증이 더했다. 부귀를 누리거나 엄청난 공을 세워 사회에 이름이 알려지는 거창한 행복을 뒤로 하고 남들이 이해 못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홀로 느끼는 행복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고작 약관의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하실 수 있었다니.. 양산보 어른의 내공이 얼마만큼 인지 가늠키가 어렵다.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란 이름의 처소 - 제월당. 그리고 비가 갠 뒤 구름 뒤로 해가 다시 내비치는 그때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손님의 거처- 광풍각 . 그 이름만으로 그가 지닌 풍류와 넉넉한 마음이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와 앉는다. 참~~ 멋진 분이시다. ^^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엔 나무하나, 풀 한포기, 바위하나 모두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6월의 물오른 연초록 나무들, 누군가는 유혹하는 모양새가 홍등가의 등불 같다 표현했던 빨간 석류꽃, 가지에 달린 채 온전히 익어 떨어진 빛 좋은 살구, 꽃을 연분홍 부채처럼 펴든 자귀나무. 배롱나무. 오동나무. 매화, 동백, 산수유.... 눈 돌리는 곳 모두가 꽃밭이고 동산이다. 피곤한 다리도 쉴 겸 잠시 광풍각 툇마루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 것 같은 편안함이다. 서까래에 들문 걸이가 있는 걸 발견하고 일어나 돌아보니 네 방향 모두가 천정에 매달 수 있는 들문으로 만들어졌다. 네 방향으로 창문을 모두 들어 열어두면 안과 밖, 나와 자연이 그대로 하나 되는 구조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사방으로 활짝 열린 여름날의 광풍각을 떠올려본다. 오늘처럼 맑게 흘렀을 냇물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 꽃들과 나무의 향기.. 아~~~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그 시절 그 분은 바람의 소통뿐 아니라 마음의 소통을 더 간절히 바라셨던 건 아닐까.. 가만히 그의 맘을 어림해본다. 아귀다툼 속에서 얻은 불안한 권세보다는 사소한 달빛과 바람과 물소리에서 얻는 행복이 훨씬 더 크다는 걸 소쇄원을 통해 직접 말씀해주고 싶으셨나보다. 작은 아름다움을 크게 나눌 줄 아는 옛 선인들의 깊고 넉넉한 마음에 흠뻑 취해버렸다. 참말로.. 참말로 집에 오기가 싫었다. 서울로 오는 길..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논.. 그 옛날에도 6월 들판은 저처럼 푸르렀겠지?? 행선지는 담양이었지만 여행한 것은 지금이 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이었던 듯 조금은 어리둥절한 마음이다. 꼼꼼히 둘러볼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이 못내 아쉬웠고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길을 달려보지 못한 것도 안타까웠지만 뭐든 한 번엔 하면 제대로 정취를 느낄 수 없는 법. 이번은 맛보기였고 꼭 다시 한 번 담양을 여행하고 싶다. 그때에도 멋지고 신기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불어 차안에서 나눈 8시간의 수다..ㅎㅎ 우린 이번 여행에서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으니 그야말로 더할 나위없는 여행이었다. 글쓴이 : 홈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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